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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도문 공부③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통치> 이사야11:1~9, 마가1:14~15
‘예수 믿고 복 받자! 예수 믿고 천국 가자!’ 신앙생활을 오래 한 기독교인이면 누구나 들어봤을 구호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기왕에 사는 거 현세에서도 잘 살고 죽어서는 천국에 가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천국에 가는 건 죽어 봐야 안다고 생각하시나요? 잘 모르시겠지요? 그래서 오늘은 주기도문 공부 세 번째 시간으로 천국, 즉 하나님의 나라에 관해서 생각해 보려 합니다. 신약성서의 큰 주제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예수님의 첫 메시지는 ‘하나님 나라’의 선포였습니다. “때가 찼다.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막1:15) 이 말씀에서 ‘회개’(悔改)란, 고대 그리스어로 ‘메타노니아’라고 하는데, 그 뜻은 ‘방향 전환’입니다. (“때가 다 되었다. 하나님의 나라가 여기 있다. 너희는 삶을 고치고 복음을 믿어라.”) 따라서 주님의 말씀은, 과거의 삶을 청산하고(고치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 된 자격을 갖추라는 뜻입니다. 그 자격이란 게 무엇입니까? 베드로후서를 통해 주님은 우리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열성을 다하여 여러분의 믿음에 덕을 더하고, 덕에 지식을 더하고, 지식에 절제를 더하고, 절제에 인내를 더하고, 인내에 경건을 더하고, 경건에 서로 우애를 더하고, 그 우애에 사랑을 더하도록 하십시오. 그리하면 여러분은, 우리의 주님이시며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갈 자격을 충분히 갖출 것입니다.”(벧후1:5~7,11) 그렇게 사는 자만이 오늘 주의 기도에 나오는 “나라가 임하게 하옵소서.”하고 온전히 기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러면 신약성서가 말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나라입니까? 고대 그리스어로는 ‘하나님의 왕국’이라 했는데, 이 말은 ‘하나님의 통치’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 하나님을 왕으로 모신 나라, 하나님의 법도에 따라 사는 나라, 하나님의 통치가 구석구석까지 두루 미치는 나라를 말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보면, 하나님의 나라는 밭에 감추어진 보물을 우연히 발견한 사람의 기쁨과도 같고, 장차 큰 나무가 될 씨앗과도 같습니다. 사람들을 초대하여 잔치를 벌이는 잔칫집과도 같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나라는 오늘 축하해야 할 기쁨의 상태이지만 동시에 그것은 미래에 완전하게 실현될 약속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나라는 은총인 동시에 우리의 과제가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의 희망이요 목표가 됩니다. 초대 교부였던 오리겐은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들 한복판에 존재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옵소서.’라고 기도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가 성장하고 그 열매가 무르익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말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기도하며 살아가는 삶이야말로 정말로 잘 사는 인생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토록 잘 살기 원하는 현실의 세계는 어떠합니까? 내 마음대로 쉽게 되는 게 하나도 없습니다. 어둡습니다. 썩었습니다. 거짓과 불의가 판을 칩니다. 속임수와 허상이 지배합니다. 죽임의 문화가 뒤덮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어둠의 뿌리를 캐가다 보면, 정말로 어두운 것은 세상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만물보다 거짓되고 아주 썩은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 했습니다. 다른 사람을 비난할 것 없습니다. 세상의 어둠을 알려면 자기의 마음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됩니다. 그런데 자기의 마음을 제대로 들여다 본 사람은 이렇게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빛을 잃은 이 세상에, 그리고 어두운 마음속에 주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옵소서!” 진실한 마음으로 이렇게 기도하는 사람은, ‘만물을 새롭게 하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는 먼저 우리 마음속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욕망으로 들끓는 내 안의 충동과 지나친 욕구를 다스리는 일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우리 인간의 마땅한 책임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속에는 지금 무엇이 자라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나라는 먼저 우리 마음속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 구체적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기아와 분쟁과 전쟁과 착취와 억압과 질병과 생태계 파괴로 만신창이가 된 세상의 신음소리를 들으면서 우리는 분명하게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옵소서!” 이것은 “죄 많은 이 세상은 내 집 아니네. 내 모든 보화는 저 하늘에 있네. 이 세상에서 살다가 천당 가게 하옵소서.”하는 현실도피적인 기원이 아닙니다. 이 불의한 세상을 하나님의 권능으로 바로잡아달라는 적극적인 요구입니다. 이것은 약자의 칭얼거림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가로막는 일체의 불의한 세력과의 싸움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병든 이들과 귀신 들린 자들을 고쳐주고,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길은 언제나 위험에 차 있습니다. 또 패배와 실패가 자명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쓰러진 길에서 새롭게 길 떠나시는 하나님이 계시기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옵소서!” 기도하는 자에게는 궁극적인 패배란 있을 수 없습니다. 이처럼 오늘의 ‘주님의 기도’는 약속된 하나님의 현실 속에서 사겠다는 다짐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현실을 하나님의 뜻에 비추며 살겠다는 결의입니다. 일상의 삶은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이 살면서, 하나님의 나라에 갈 꿈을 꾸는 자들에게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가는 길을 이 땅에서 잘 익혀두지 않으면, 죽어서는 영영 그 길을 찾지 못합니다.” 그러면 이렇게 물을 것입니다. “그 길을 어떻게 익혀야 하나요?” “당신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에 가면 이것은 없을 것 같다 싶은 것을 버리며 사세요. 또 하나님의 나라에 꼭 있었으면 하는 것을 삶 속에서 실천하세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옵소서!” 그런대도 우리는 자꾸만 천국을 죽어서 가는 저 세상 정도로 쉽게 생각합니다. 그러다보니 이 세상에서의 삶이 분명하지 않은 것이지요. 사도 바울은 “하나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14:17)고 했습니다. 의로움과 평강과 기쁨은 그저 성경에 나오는 듣기 좋은 말이 아닙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보증해 주시고 성취하신 하나님 나라의 약속입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로 향해 가는 길이 때로는 험난하고, 때로는 모호하고 불안하더라도 확신을 가지고 나아가는 것은, 그 약속을 믿기 때문입니다.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고통과 번뇌와 슬픔과 갈등과 죽음이라면 누가 이 길로 걸어가겠습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여러 가지 비유로 설명하시면서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과의 사랑의 친교이며 기쁨이고 평강이라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이것을 보증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가 사랑과 친교와 기쁨과 평강 속에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기도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발견하며 또 이루어가며 살기를 바랍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참으로 어둡기만 합니다. 그런데 그 어두운 것이 빛이 없어서 어두운 것이 아니라, 빛을 볼 줄 아는 우리의 눈이 없거나 아니면 아예 눈을 감고 있어서라고 생각합니다. 자비로우신 주님, 우리에게 이 어두운 세상 저쪽에 동터오고 있는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있는 안목을 주시옵소서. 그리고 다시 한 번 우리의 일생을 하나님 나라를 위해 신실하게 살고자 다짐하게 해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