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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도문공부⑧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역대상 29:10~13, 시편 145:10~13
오늘은 ‘주기도문 공부’ 마지막 시간입니다. 이 마지막 기도는 주기도문의 송영 부분에 해당됩니다. 앞에서 여러 가지를 간구했는데, 우리가 왜 하나님 아버지를 감사한 마음으로 경배해야 하는지, 왜 하나님께 기도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전부터 사용해온 주기도문에는 ‘대개(大蓋)’라는 말이 있는데, 큰 대자, 덮을 개자를 써서 ‘무슨 일의 큰 원칙으로 말하건대’ 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중국어 성경에서 온 말입니다. 한글 성경에는 이 ‘대개’란 말이 없고 찬송가 주기도문 영창에 나온 걸 그대로 사용했기 때문에 우리의 입에 습관적으로 붙어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문맥상 이 ‘대개’라는 말은 빼버리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이 마지막 송영은 우리 기도의 기초가 되고 바탕이 됩니다. 이 세상의 모든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하나님 아버지께 속한 것이므로 우리가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능히 우리의 모든 기도를 들어주시고도 남을 만큼, 모든 권세와 영광을 한 손에 쥐고 계신 분입니다. 본문 역대상 29장을 보면, 다윗이 성전건축을 준비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말이 나옵니다. “우리 조상 이스라엘의 하나님, 길이 찬양을 받으소서. 주의 위대하심과 능력과 영광과 승리와 존귀가 모두 주의 것입니다.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이 다 주의 것입니다.” 이 고백은 우리 하나님이 이 세상의 하찮은 신들과는 분명히 다르다는 뜻입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이렇게 믿을 수 있어야 진짜 그리스도인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다른 종교를 기웃거리거나, 미신을 섬기거나 하나님의 권세와 영광을 확신하지 못하는 신앙은 정말 문제가 많은 신앙입니다.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니다.” 그러므로 주기도의 마지막 부분은 ‘신앙고백’인 동시에 ‘기원’이며, ‘기원’인 동시에 성도의 ‘다짐’입니다. 현실적인 삶의 문제 해결이든, 종말론적인 소망의 성취든,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에게 달려 있다는 점에서 ‘고백’이지만, 기도자의 고백은 그런 세상이 속히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소망에서 나온 것이기에 ‘기원’입니다. 또 이런 고백을 하는 사람은 뒷짐을 지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기다리기만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움직이면 백성이 따라서 움직였듯이, 그리스도인은 나라와 권세와 영광을 되찾기 위한 하나님의 선한 싸움에 동참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뜻에서 이 고백은 그리스도인의 ‘다짐’이 되는 것입니다. 부모에게 무엇을 요구하는 자녀는 ‘내 부모는 내가 요구하는 것을 능히 들어줄 수 있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에 당당하게, 자녀로서 요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먼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부모와 자녀)에 확신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주기도의 첫머리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믿고 고백하는 이 관계성이 분명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아버지의 권세와 능력을 믿어야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기도는 하지만 하나님이 과연 들어주실까?” 이런 나약한 신앙을 갖고 있다면 그 기도는 이미 기도가 아닌 겁니다. 그래서 주기도의 마지막에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니다.”는 고백과 기원과 다짐으로 당당하게 끝을 맺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광이 하나님께 있다는 고백’은 무슨 말일까요? 모세는 하나님에게 주님의 영광을 보여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내가 나의 모든 선한 형상을 네 앞으로 지나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반포하리라. 나는 은혜 줄 자에게 은혜를 주고 긍휼히 여기는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출33:18~29) 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다름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심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세상을 만드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고 하셨던 주님의 탄성은 이미 잊혀진지 오래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사람을 지은 것을 후회하시며 마음아파 하십니다. 그래서 잊혀진 하나님의 기쁨을 되찾아드리는 것,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신 뜻이 무엇인지 알고, 제 몫의 삶을 제대로 감당하는 삶 말입니다. 따라서 순간의 삶 속에서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바를 채워가며 사는 삶이야말로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다.”는 고백을 참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원히라는 고백’은 또 무슨 말인가요? ‘영원히’라는 말은 하나님의 변함없음과 완전하심을 뜻합니다. 사람은 수시로 변하지요. 우정도 변하고 사랑도 변합니다. 바로 며칠 전 철석같이 했던 약속도 안 지키는 게 사람입니다.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권세는 십년을 못 간다는 뜻에서, 아무리 권세가 높다 해도 오래가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이 세상의 권세도 부귀영화도, 일시적이고 부분적이어서 완전한 것이 못됩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완전한 분이요, 태초 이래 지금껏 변함없는 분입니다. 이렇게 영원한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께 기도를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결코 허공에 대고 외치는 빈 소리가 아닙니다. 옛날 우리 조상들이 천지신명께 빌듯이 그렇게 막연한 신에게 비는 기도가 아닙니다. 어떤 시시한 신에게 돈 몇 푼 놓고 비는 그런 기도가 아닙니다. 마음을 맑게 하는 명상도 아니고, 무슨 기를 모으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하늘과 땅의 주인이시며, 모든 나라와 권세와 영광을 한 손에 쥐고 계신 그분을 나의 아버지로 모시고, 그분에게 나의 사정을 아뢰는 것이 우리의 기도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는 우리의 옛 모습에 대한 철저한 부정인 동시에 새로운 삶에 대한 출발점입니다. 우리가 진심으로 이 기도를 드리면 아멘 이전의 삶과 이후의 삶은 같을 수가 없습니다. 믿음으로 맑아진 영혼은 세상을 꿰뚫어보는 눈빛으로 빛나고 세상을 이길 힘으로 넉넉해지지 않겠습니까? 따라서 주님의 기도는 우리가 각종 모임을 마칠 때 사용하는 편리한 수단이 아니라, 예배 때마다 외우는 순서가 아니라, 기독교 신앙의 토대요 우리가 가야할 길입니다. 앞으로 언제까지나, 몸과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주님의 기도를 드리고 나면, 우리는 분명히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된 존재로 거듭날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무엇을 구하며 어떤 기도를 드려야 할지 망설일 때가 많습니다. 밤을 새워가며 부르짖을 때도 있지만, 진정 무엇을 구해야 할지 몰라 고민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무엇을 구해야하는지 이렇게 가르쳐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의 신앙의 근거가, 확신의 기반이, 우리 개인의 명성이나 경건이나 체험이나 느낌에 있지 않도록 도와주옵소서. 영원한 하나님의 약속에 신앙생활의 초점을 맞출 수 있게 하옵소서. 우리가 우울하거나 실패하거나 마음이 괴롭거나 기쁨이 없거나 뜨겁지 않더라도, 늘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하나님께 나아가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이름이 늘 거룩히 여김을 받으실 수 있도록 기도할 수 있게 하시고, 그의 나라를 구하게 하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성실하게 살게 하시고, 아버지께 일용할 양식을 구하게 하시고, 시험과 악에서 구원 받기를 늘 기도하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권세,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도록 우리의 눈을 열어 주옵소서. 존귀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