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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사태로 모두가 힘들어 하는 이 때, 이 영화를 추천합니다..
<더 그레이> 2012년 미국,캐나다 줄거리 길라잡이 : 야생동물로부터 알래스카 노동자들을 보호하는 일을 하는 오트웨이(리암 니슨) >> 모든 일을 마치고 귀향하던 중 뜻하지 않은 비행기 사고 >> 알래스카 설원에 간신히 살아남은 이들의 추위와의 사투 >> 저마다 아픔이 있는 사람들 >> 자살하려 했던 주인공도 죽음을 두려워함 >> 늑대와의 사투 속에 행복했던 추억을 의지해 살아남으려는 몸부림 >> ‘왜 나에게 이런 일이? 누가 날 좀 도와줘!’ 절규하지만 늑대로 인해 한 명씩 죽어가는 생존자들 >> 끝내 늑대의 본거지인 문제의 핵심에 주인공 혼자만 남게 됨 >> 날 좀 도와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호소하지만 대답 없는 허공을 향해 스스로 해보겠다는 주인공 >> ‘오늘이란, 어제 세상을 떠났던 이들이 간절히 기다리던 내일’이기에 악착같이 살겠다는 마음으로 대장 늑대와 대결함 >> 결국 주인공이 이겼다는 암시로 영화는 끝난다. 주인공의 명대사 - "바로 오늘을 살아가고, 바로 오늘 죽는다." *스스로 늑대와 한 번 싸워보려는 용기를 가졌다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응답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코로나19 사태 속에 우리는 선하신 분께 이 사태를 해결해 달라고 기도했고, 예배가 끊기는 일이 없게 해달라고 부르짖었고, 이 어려움을 극복하고 전화위복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고, 이단들을 심판해 달라고 간구했지요.. 그런데 우리가 체험한 것은 영화에서 오트웨이(리암 니슨)가 경험했던 공허함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분명히 응답하시지 않았을까요?. "나를 선하다 하느냐? 이 사태가 해결되기를 바라느냐? 그럼 너희도 선해져야 한다." "지금까지 예배가 끊긴 적이 있었드냐?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예배가 아니라 내 뜻에 대한 순종이니라." "어려움은 이미 극복하고 있지 않느냐? 그것이 쌓이면 자연스레 전화위복이 되는 것을.." "이단? 그래, 종교의 변종바이러스가 이단일 수 있겠구나. 그럼 그 이단들이 득세하게 된 숙주가 누구였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거라." - "내 뜻이 무엇인지 알았으면, 너희는 선한 마음을 잃지 말고 서로 힘을 모아 이 어려움을 이겨나가야 한다. 그 자리에 내가 있느니라!" (영화 소개하다 설교가 돼버렸는데, ㅠ 나는 이 영화를 다섯 번이나 보면서 이 메시지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큰 힘과 위로가 됐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