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천천히
작성일 2012-12-17 (월)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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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림절 셋째 주, 월요일 ”
 
 
하느님 닮기
 
"나는 분명히 말한다.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고 있다. 사실 요한이 너희를 찾아와 올바른 길을 가르쳐 줄 때에 너희는 그의 말을 믿지 않았지만 세리와 창녀들은 믿었다. 너희는 그것을 보고도 끝내 뉘우치지 않고 그를 믿지 않았다."(마태21:31~32)
 
  여기서 예수는 다시 수수께끼 같은 말씀을 하신다. 만일 내가 이렇게 말하거나 글을 썼다면, 사람들은 내가 도덕을 희석시키고 흐트러진 생각을 한다고 비난할 것이다! 그와 같은 혼동을 그대로 품고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먼저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모순들을 인정하고, 하느님으로 하여금 그토록 불완전한 상태에 있는 우리를 여전히 사랑하시게 해드려야 한다. 일단 자신의 어두운 그늘, 어리석음, 죄를 보면서 그래도 하느님이 우리를 버리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우리는 하느님의 선하심을 드러내는 살아있는 역설이 된다. 바로 이것이, 세리와 창녀들이 한 일이었고 그들을 바꿔놓은 일이었다. "괜찮은 인간들"은 자기와 하느님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좀처럼 바꾸려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주목하라. 그러나 일단 우리가 우리의 불완전함 속에 하느님이 계시고 그분의 사랑이 우리의 완벽함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면,다른 사람들의 모자람이 더 이상 우리에게 걸림돌이나 놀랄 만한 무엇이 되지 않는다. 그때부터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좀더 많이 참아주고 그들에게 동정심을 베풀 수 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바로 그 일을 하시도록 해드렸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그리스도인의 윤리생활이란 "하느님을 닮아가는 것"(에베소5:1)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나는 불완전한 모순 덩어리다. 그런데 동시에 나는 성자다. 나는 아주 착한 사람인데 또한 죄로 가득한 인간이다. 나는 그것을 손에 넣었으면서 그것을 거역한다. 이 둘이 모두 진실인가? 그렇다! 둘은 언제나 그리고 영원히 진실이다. 바로 이것이, 하느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신비롭고 놀라운 이유다. 신앙이란 바로 이 신비에 인격적으로, 이론상으로가 아니라 일상생활 가운데 온몸으로, 굴복하는 것이다. 가련한 창녀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정직하게 말하여, 우리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사고방식으로 새롭게 살라"는 말이 바로 그 말이다. "모든 머리의 변화는 무엇보다 먼저 가슴의 변화다. 가슴이 달라지지 않는 한, 새로운 생각은 오래 가지 못한다." 누가 사도의 말대로, 우리는 죄를 용서받고 구원받는 길을 알게 될 것이다.(누가1:77) 용서가 하느님이 하시는 일이기 때문이 아니라 용서는 곧 하느님이시기 때문이다. 날마다 신성한 자비의 폭포 아래 서서 그 물을 받아 자기 속으로 흐르게 하는 관(管)이 되지 않고서는, 하느님의 본성을 깨달을 다른 길이 아마도 없을 것이다.
 
|되묻기|
- 내 안에 있는 불완전한 모순들은 어떤 것들인가? 그래도 나는 하느님이 나를 사랑하신다고 생각하는가? 그런 나를 나는 사랑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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