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천천히
작성일 2019-05-04 (토)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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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강이 있을지어다! ”

부활절 두 번째 주일을 맞이했습니다. 사순절과 고난주간을 지내고 마침내 부활절을 맞이하며 우리가 체험한 것은 주님의 ‘안 계심’(공허함)과 ‘함께 하심’(충만함)입니다.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듯 죽음과 부활을 연속적으로 체험하면서 우리는, 두려움 속에서 현실을 부정해버린 제자들도 보았고, 주님의 안 계심으로 인해 근심하던 여인들도 보았지만, 그 중에 우리를 가장 놀라게 한 것은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눅24:5)는 천사의 물음이었습니다. 오늘,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그 날 천사의 말을 듣고, 비로소 갈릴리에 계실 때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기억하고(눅24:8), 무덤에서 돌아가 주님의 부활 소식을 전했던 여인들처럼, 부활의 감격과 그날의 벅찬 여운이 아직도 여러분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성경 말씀과 삶을 각각 따로따로 체감하며, 그래도 ‘죽음은 죽음일 뿐’이야, 여기며 살아가고 계십니까?

미국의 기독교 작가인 ‘필립 얀시(Philip Yancey)’는 <아, 내 안에 하나님이 없다>라는 책에서, 자신 역시 그러한 상황을 수 없이 겪었다고 말하면서, 그런 의심은 자신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도 있었다는 사실에 주목했습니다.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요6:60)라고 회의적인 사람들의 입에서나 나올만한 그런 말들을 하며 제자들은, 자신들이 예수님의 말씀에 이끌리면서도 동시에 거부하고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마치 나침판의 바늘이 자석에 이끌려 요동치는 것과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많은 군중과 구경꾼들은 어깨를 늘어뜨리고 하나씩 빠져나갔습니다. “너희도 가려느냐?”(요6:67) 예수님은 애처롭게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베드로가 대답했습니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요6:67) 필립 얀시는 자신이 지금까지 신앙을 놓지 않고 굳게 잡고 있는 이유가 바로 이 고백 때문이라면서, 터무니없어 보이는 믿음을 버리지 않고 담대하게 살아가는 ‘거룩한 바보들’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역사하신다고 말합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 요 20:19b

주님의 이 인사는 한 번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주님은 19절과, 21절, 26절에서 세 번이나 거듭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하고 인사하십니다. 우리 주님은 왜 이렇게 세 번이나 같은 인사를 하신 걸까요? 제자들이 평강을 잃어버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 평강을 잃어버린 이유는 여러 가지로 설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산헤드린의 군사들이 언제 들이닥쳐 자신들을 잡아갈지 모르는 상황이 무엇보다 그들을 두려워하게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두려워한 이유는 또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걸어가는 ‘넓은 길’을 그들 역시 걸어갔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수난과 죽음을 향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실 때에도, 그들은 ‘누가 더 크냐’는 서열의 문제를 가지고 민감하게 신경전을 벌이곤 했었습니다. 첫 번째 두려움이 본능적인 것이었다면, 두 번째 두려움은 정치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두려움에 빠져 있는 제자 중에는 장차 예루살렘의 종교 지도자들 앞에서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께서 살리셨다”며 담대하게 부활을 증언할 베드로도 섞여 있었습니다. 우리는 생각하게 됩니다. “비겁한 제자 베드로에서 당당한 사도 베드로로의 변화, 사람들이 걷는 ‘큰 길을 걷던 베드로’가 아니라, 거짓 생명을 버리고 ‘돌아선 베드로’의 변화를 우리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중략)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 주시는 주님의 말씀을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우리에게도 평강을 내려주십니다. 또한 성령의 숨을 들이마시기를 바라십니다. 그러니 주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에 두지 않으면, 예수님의 호흡을 우리가 받아들이지 못하면, 우리는 처음 제자들처럼 슬픔과 두려움에 빠져 어둡고 두려운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잘 듣고 마음에 간직할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호흡에 나의 호흡을 실어 살아간다면, 주님의 말씀이 내 안에 가득 차고, 주님의 숨결이 내 안팎에 가득 차서, 어둡고 두려운 세상에 생명을 심고, 그리스도와 함께 생명을 틔워내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모두 이 부활절에, ‘거룩한 바보들’로 살아가시기를 부활하신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_ 지난주일 설교 중에서 (요한복음 20장 19~3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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