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서기관들은 성경을 해석해서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말씀 전문가일 뿐 아니라, 기도의 달인이었습니다. 그들은 언제 어디서나 거룩한 옷을 입고 거룩한 목소리로, 길고 아주 능숙하게 기도하는 능력이 있었는데, 과시용 겉치레가 많았습니다. 그들은 말씀과 기도를 따라 살지 않고, 대신 말씀과 기도의 현란한 능력을 이용해서, 자신의 권력과 명예와 배를 채웠던 것입니다. 심지어 가난하고 무지한 과부들을 도와주는 척 하면서, 실제로는 과부의 가산을 빼돌리거나 채무에 대한 담보로 저당을 잡기까지 했던 것이지요.
그렇다면 성전은 어땠을까요?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에 의하면 당시 예루살렘 성전은 엄청난 부를 소유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성전의 내부에는 보물을 쌓아 두는 방이 여럿 있었고, 곳곳에 헌금함이 있었으며, 그 위에 헌금의 목적이 씌어 있어서 사람들이 다양한 명목으로 헌금을 내게 했다고 합니다. 오늘 말씀의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을 헌금한 곳도 그 중에 하나였을 것입니다. 그렇게 볼 때, 오늘 말씀은 자신의 모든 소유를 헌금한 과부에 대한 예수님의 칭찬이라기보다, 불쌍한 과부들의 가산은 물론 쌈짓돈까지 빼앗아가는 부자 서기관들과 예루살렘 성전 당국의 불의를 질타하신 것입니다.
그럼에도 오늘 예수님의 말씀은 가난한 과부를 두둔하는 면이 없지 않습니다. 44절입니다. 일찍이 예수님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라고 가난한 이들에게 복을 선언하신 것처럼, 이 말씀은 힘이 없어 늘 당하고만 사는 한 가난한 과부를 예수님이 축복하신 것일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보든, 오늘 말씀은 우리가 헌금을 어느 정도로 해야 할 것인가와 같은 헌금에 대한 지침이라 보기는 어렵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주목해 볼 것은 평소와는 다른 예수님의 특별한 행동입니다. 41절입니다. 예수님이 성전 헌금함 앞에 아예 자리를 잡고 앉으셨다는 것인데, 예수님은 거기서 사람들이 헌금을 얼마나 하는가, 자세히 보셨습니다. 여러분,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수많은 자리 가운데 굳이 헌금함이 잘 보이는 곳에 예수님이 자리 잡고 앉으신 것도 그렇고, 민망하게 사람들이 헌금하는 것을 예수님이 자세히 관찰하셨다니 말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헌금함 앞에서 보인 예수님의 이 특이한 행동도, 예언자의 상징적 행동처럼 볼 수 있습니다. 무언가 중요한 뜻이 있다는 것인데, 아니나 다를까 예수님은 곧바로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다시 43~44절입니다. 예수님이 이 괴팍스러운 행동을 통해 제자들에게 가르치고자 하신 것은, 다름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였습니다. 세상에는, 크고 화려하지만 불의한 것이 득세합니다.
반면에 작고 보잘 것 없는 것은 의롭고 순수해도 무가치해 보입니다. 오늘 말씀에서는 회당의 높은 자리와 잔치의 윗자리에 앉는 사악한 서기관들, 그리고 그들에 의해 이용당하는 비천한 과부가 대조됩니다. 성전에서는 불의한 부자들이 낸 많은 헌금과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이 비교됩니다.
본문의 정황상 이제 며칠 후면 예수님은, 가난한 과부의 보잘 것 없는 두 렙돈처럼, 세상의 무관심과 조소 가운데 낮고 천한 십자가의 죽음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리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 나라는 그렇게 보잘 것 없는 모습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은 한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이 부자들의 많은 헌금보다 더 많이 드려진 것이라는 이 역설적인 이야기를 통해, 제자들뿐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도 하나님 나라를 추구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과연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해 매우 중요한 가르침을 주고 계신 것입니다. 그 중요한 가르침이란 무엇일까요?
하나님이 자신의 모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자신의 모든 것을 드립니다. 즉 성서에서 전부는 하나님 나라를 살 수 있는 가치입니다. 예수님의 천국 비유에서 밭에서 보화를 발견한 사람은 자기 재산 전부를 팔아 그 보화를 얻습니다. 어떤 진주 장사꾼은 자신의 보화 전부를 팔아서 원하는 진주를 손에 넣습니다. 또한 영생에 이르는 길을 묻는 한 부자 청년에게 예수님은 그의 재산을 다 팔아서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오늘의 이야기, 빵 하나도 살 수 없는 두 렙돈으로 과부는 하나님의 나라를 차지합니다. 그러니까 ‘전부’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장 많은 것이며 언제나 충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말씀은 다시 생각해 봐도 헌금에 관한 지침이 아닌, 하나님 나라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세상의 크고 화려하고 힘 있는 것 앞에서 늘 유혹을 받지만, 오히려 그로 인해서 세상에서 외면당하기 쉬운 작고 초라한 하나님의 나라의 가치를 늘 붙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나라가 비록 세상 속에서 아직은 너무나 작고 미약하게 보여서 사람들이 알아차리지 못할지라도,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그 위대한 승리와 그 비교할 수 없는 영광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이미 완벽하게 이루셨다는 사실을 오늘도 굳게 믿어야 할 것입니다. 결국 믿음입니다. 믿음대로 됩니다! 하나님을 자신의 모든 것으로 삼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도 그의 모든 것이 되십니다. 남김없이 드리고 나누는 사람은, 날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새로운 양식을 먹으며 삽니다. 그러나 남겨놓은 사람들은 늘 어제의 지나간 양식을 먹으며 살겠지요... ▣
-지난주일 설교 중에서 (마가복음 12장 38~44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