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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인감정을 해소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집단 사이의 증오를 화해로 바꾸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에게는 지역감정이란 문제가 있는데, 오랫동안 중요한 사회 문제였고 지금도 별로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서양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라와 나라 사이의 감정과 한 나라 안에서 지역 사이의 감정이 오래 지속되면서 심각한 사회갈등을 일으켰습니다. 스포츠 경기를 통해서도 이 지역감정은 때로 폭력으로까지 번져서 안타까운 희생자들을 낳는 경우도 있었지요. 그러면 교회는 어땠을까요? 2) 아직 교회가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추기 전, 1세기 교회들이 마주한 여러 가지 과제 중에는 집단감정의 문제가 내재해 있었습니다. 본래 기독교는 그 출발점이었던 예루살렘에 머무르려는 경향이 강했는데, 스데반의 순교로 인해 초대교회가 유다와 사마리아로 흩어지면서 복음이 확산되었고, 결정적으로는 바울이라는 위대한 사도의 선교를 통해 그리스와 로마까지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 복음이 유대인들에 의해, 유대인들만을 대상으로 전파될 때는 이런 문제가 심각하지 않았는데, 사마리아와 소아시아로 확산되면서 교인들 간의 갈등과 반목이 곳곳에서 일어났습니다. 같은 기독교인이지만 유대교적 환경에서 태어나고 자라난 유대인 기독교인들과, 이들과 전혀 다른 환경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예수를 믿은 비유대인(이방인) 기독교인들이 서로 다른 관습과 사고방식을 지닌 것은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었습니다. 이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환경의 차이에서 오는 어쩔 수 없는 현상이었습니다. 서로 다른 언어, 문화, 전통, 관습, 가치관 등이 교회라는 이름으로 모인 사람들 사이에서도 충돌하여 갈등을 일으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고, 신약성서의 여러 서신들은 바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었지요. 오늘 우리가 본문으로 읽은 에베소서도 사도 바울이 에베소교회와 또 이와 비슷한 상황에 놓인 여러 초대교회들을 향하여 호소한 눈물의 편지입니다. 이렇게 편지를 쓴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교회 내 집단적 대립의 문제입니다. 초대교회들은 이런 서신을 회람하면서 문제 해결의 방향을 잡았습니다. 원래 종교인들이 충돌하면 끝까지 가는 성향이 있어서 절충하고 조정하기가 어렵습니다. 특히 구원에 관한 문제는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초대교회 내부의 갈등과 충돌은 기독교가 유대인만의 종교에서 세계 종교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겪어야 할 필연적인 과정이었습니다. 3) 여러분, 바울이 간곡하게 양측의 화해를 호소하는 이유는 이렇습니다. 기독교 복음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인데, 주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이유를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화해를 통해 하나 되는 것이라는 고백이었지요.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16절)
예수님의 십자가는 죄 때문에 하나님과 분리되었던 인간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만드셨고 나아가 서로 원수처럼 지내는 사람들도 화해로 이끌어 한 공동체가 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본질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는 존재인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십자가의 은총, 그 십자가의 은총을 입은 우리는 마치 일만 달란트 빚진 자가 탕감 받은 감격으로 우리 이웃들과의 작은 문제를 해소하여, 원수가 아니라 한 가족으로 살아가는 것이 우리 주님의 십자가 사랑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신앙인의 자세입니다. 주님의 십자가 은혜 아래 서있으면, 이 세상 그 어떤 것도 용서하지 못할 것이 없으니, 우리가 진정한 신앙인이라면 무슨 이유라도 십자가로 원수를 소멸하고 친구가 되어야 합니다. 개인의 삶에서나 집단적 생활에서나 서로가 서로를 적대시 하지 않고,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요 자매라고 기뻐하며 하나 되는 세상은, 십자가에 달리신 우리 주님의 꿈이었습니다. 그 꿈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 교회요, 교회는 자신 안에 그리고 세상을 향해 원수를 소멸하고 평화의 공동체를 만드는 거룩한 사명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임인 것이지요.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은 개인의 삶과 역사의 방향을 정확하게 만들어 가십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면서까지 이루고자 했던 일, 곧 막힌 담을 헐고 하나가 되며, 원수관계를 청산하고 친구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분명 이 방향으로 한반도의 역사를 움직이고 계십니다. 그러니 우리도 기도와 나눔을 통해 주님의 역사에 동참하는 그리스도인들 되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 - 지난주일 설교 중에서 (에베소서 2장 14~1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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