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천천히
작성일 2018-07-21 (토)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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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례자 요한의 죽음 ”

요한은 이제 죽음의 길로 들어서는데, 정말 역설적이게도 그것은 예수님이 이 세상에 드러나는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역사는 언제나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습니다. 역사가 어떻게 흘러갈지는 오직 하나님만 아실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앞에 닥치는 슬픈 일, 괴로운 일, 답답한 일, 억울한 일, 말도 안 되는 일로 인해 고단한 삶을 살고 있는 우리지만, 그 현실 너머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믿고 오늘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릴 줄 알아야겠습니다.

마가복음이 전하는 바를 그대로 따른다면, 헤롯은 요한의 말을 듣고 나름대로 번민을 했다고 하니, 그래도 다행입니다. 물론 그가 자신의 행동이 잘못되었다고 인정한 것인지, 아니면 그것을 지적한 사람이 위대한 예언자라서 정신적으로 부담을 느낀 것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어찌됐든 그의 양심이 움직이고 있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양심의 가책으로 인한 번민만으로는 결코 진리를 올바로 수행해 나갈 수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헤롯의 한계였으며, 결국 그는 요한의 목을 베는 결정적인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도 헤롯과 같이 양심의 가책을 받아 번민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번민만 하다가 진리의 길에서 벗어나버릴 지도 모릅니다. 기독교는 고민하고 번민하는 데서 진리를 찾는 종교가 아니라, 진리를 믿고, 우리 또한 진리가 되어 살아가는 종교임을 명심하셔서, 우리의 신앙이 언제나 올바르고 분명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면서, 꼭 필요한 말만 가려서 한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습니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긴장을 풀고 잡담을 하는 시간도 필요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별로 필요 없는 말을 많이 하다보면 자신의 정신세계에 어딘가 상처가 나기 마련이고, 그런 말들이 다른 사람의 정신을 파괴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말에 자신의 마음을 담는 훈련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말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해서, 이 말이 나와 상대에게 꼭 필요한 말인지 반드시 살펴야 한다는 뜻입니다. 헤롯은 자기의 말이 어떠한 결과를 불러올지 전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헤롯은 사람들 앞에서 기분을 낸다고 춤꾼 소녀에게 내지 말아야 할 말을 내고 말았습니다. 바로 후회할 수밖에 없는 말을 내뱉고 말았지요. 허풍에 가까운 말로 인해 당시 역사가 크게 흔들려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우리로 인하여 비극의 역사가 아니라 기쁨의 역사가 일어나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진실만을 말해야 할 것이고, 덕 있는 말을 해야 할 것이고, 말하기 전에 반드시 한 번 더 생각해 볼 수 있는 지혜를 가질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성령께서 오늘도 우리 모두에게 찾아오셔서, 누군가를 살리고 진리를 보여주고 옳은 길로 걸어갈 수 있도록 우리 모두를 도와주실 것입니다.

이제 헤롯의 명령에 따라 베어져 소반에 담긴 요한의 머리는 춤꾼인 소녀의 손을 거쳐서 결국 헤로디아에게로 갔습니다. - 헤로디아의 분풀이는 요한만을 죽인 게 아니라 자기는 물론이고 남편인 헤롯과 딸, 그곳에 모여 있던 모든 사람들을 죽인 거나 마찬지가 되어버렸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들여다 볼 줄 알아야 합니다. 헤로디아의 경우만 그런 게 아니라 우리도 그렇습니다. 어리석게도 헤로디아의 분풀이를 되풀이하고 있을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요한은 이렇게 끔찍하고 허망하게 죽었습니다. 예수님은 빌라도에게 재판이라도 받았지만, 요한은 그런 절차도 없이 헤롯의 생일잔치에서 벌어진 말 한마디에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안타깝고도 슬픈 일입니다. 요한의 죽음이 비극이기는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이런 방식으로 역사가 발전하는 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의 공생애는 바로 요한의 죽음으로 시작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았으며, 요한의 제자들 중의 일부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어찌됐든 요한은 예수님의 공생애를 가능하게 했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을 일으킨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그렇게 죽었습니다. 비록 안타깝고 슬픈 일이지만 요한은 역사상 가장 중요한 시기에 반드시 필요한 일을 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는 누구나 한 번 태어나고 한 번 죽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이 땅에서의 일이고, 영원히 죽지 않을 길을 오늘, 요한과 예수님의 역사에서 발견하고 믿기 바랍니다. ▣

- 지난주일 설교 중에서 (마가복음 6장 17~2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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