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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도문 공부④ <주님의 뜻이 땅에서도> 마가 14:32~42
우리가 살아온 지난 100년 동안 그리고 이 21세기에도 세계에 많은 전쟁이 있었고 또 계속되고 있으며, 그때마다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습니다. 그러한 전쟁과 살육은 결코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전쟁이 사라지고 모든 나라가 평화를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독재자와 자본가들의 억압도, 사람을 노예로 부리는 일도, 병든 문화로 인해 사람의 몸과 마음이 황폐해지는 것도 결코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에 반대되는 이러한 것들을 우리는 ‘죄악’이라 부릅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많은 비극은 대부분 이 죄악으로 인해 일어난 것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하나님께 “당신의 뜻이 하늘에서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기도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마다 우리의 기도가 응답 받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100% 응답 받는 기도가 무엇인지 아시나요?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입니다. 자, 다 같이 해보실까요?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그런데 이 “뜻이 이루어지이다”하는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진정으로 원하는 성실한 사람만이 드릴 수 있습니다. 가슴 속에 은밀한 욕망을 숨긴 채 “뜻대로 하소서.”하는 기도는 진정한 기도가 아닙니다. 우리 대부분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뜻대로 하소서. 하지만 하나님, 내 마음 내 사정 다 아시지요? 그러니까 알아서 해주세요.” 그러나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이 자신들의 기대를 저버린다고 느끼는 순간 태도를 바꿉니다. “제가 그토록 원했는데, 그러실 수 있나요? 하나님, 그러시는 게 아닙니다.” 내가 드리는 기도는 좀 다르다고요? 얼마나 다른지 깊이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은 고난의 쓴 잔을 피할 수 있는 길은 없겠냐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리고 고뇌의 긴 시간이 지난 후 예수님은 마침내 “나의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하고 기도했습니다. 오늘, 주의 기도 속에는 이미 겟세마네의 기도가 예기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하는 이 기도는 하나님께서 기대하시는 일을, 진짜 온 몸으로 채울 각오가 된 사람만이 드리는 기도입니다. 낮아지라시면 낮아지고, 가난해지라시면 가난해지고, 불과 물 속에 들어가라면 들어가겠다는 실행의 용기가 없이 이 기도를 드릴 수는 없는 것입니다. 또한 이 기도는 지금은 이해할 수 없어도 때가 되면 세상에서 그리고 우리 마음에서, 하나님의 뜻이 아름답게 이루어지리라는 것을 믿는 사람들이 드리는 절대적인 믿음의 기도일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도 주님의 기도를 바르게, 그리고 진실한 믿음으로 드리기를 바랍니다. ‘아픔의 자리에서 바라보아야 세상이 제대로 보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도 아픔의 자리에서 바라보아야 제대로 보인다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죽음의 영이 지배하는 이 세상을 살림의 영이 충만한 거룩한 땅으로 바꾸기 위해 땀 흘릴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라야 오늘의 주의 기도를 바르게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한 유대인 랍비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거룩한 땅은 어딘가? 그대의 신발을 벗고서 그 자리에 서 보라. 그러면 자신이 서 있는 그 자리가 거룩한 땅임을 알게 될 것이다.” 달리 말하면, “그대가 몸과 마음과 뜻을 바쳐 섬겨야 할 교회가 어딘가? 그대의 마음을 열고 그 자리에 서 보라. 그러면 그대는 자신이 서 있는 그 자리가 섬겨야 할 교회임을 알게 될 것이다.”로 바꿔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그 자리가 꽃자리’입니다. 따라서 거룩한 땅은 어느 특정한 장소가 아닙니다. 신발을 벗고 선 자리, 바로 그 자리가 거룩한 땅입니다. 그러니 이제 우리의 신발을 벗읍시다. 내로라하는 자만심의 신발을 벗고, 은근히 남을 무시하는 신발을 벗고, 편협과 아집의 신발을 벗고, 무관심의 신발을 벗고 또 벗읍시다. 그러면 범죄, 눈물, 한숨, 비탄, 절망, 속임수 등등 온갖 불협화음을 일으키는 이 악취 나는 세상도 하나님과 소통하는 거룩한 땅임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이 땅에 살지만 하늘을 품고 사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포도가 포도즙으로 바뀌고, 포도즙이 포도주로 바뀌고, 그 포도주가 성찬으로 바뀌듯이 우리의 삶도 점차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변해가기를 바랍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이렇게 기도하는 사람에게 주님은 오늘도 “너희가 잡은 생선을 좀 가져오라.” 하십니다. 숯불 위에는 이미 떡과 생선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우리의 수고를 보태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할 일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 시대에 가장 암울한 말이 무엇입니까? “남이 하는 대로, 나 하나쯤이야, 세상이 다 그런데.”입니다. 그러나 우리 시대에 남은 희망의 말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입니까? “나 하나만이라도, 내가 있음으로, 내가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고 생각해본 주기도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하루빨리 죽어서 천당에 가는 것이 예수를 믿는 목적이 아니고, 우리가 몸담고 살아가는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사는 것이 삶의 목적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을 멸망의 대상이 아니라 구원의 대상으로 보는 것입니다. 동시에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사명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주님의 거룩한 뜻을 이 땅에서 실현하는 일에 동참함으로써, 하나님 나라 건설의 역군이 되겠다는 각오와 다짐이 이 기도 속에 담겨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만물을 새롭게 하는 창조의 역사를 이루어가고 계십니다. 거기에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물론이고 우리 가정, 우리 교회, 우리나라 민족 전체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그 약속을 바라보면서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날마다 기도하게 됩니다. 우리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진다는 희망이 없다면 어떤 목적으로, 무슨 의미로 이 현실을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겪는 고난과 때때로 찾아오는 회의와 절망 가운데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것은,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그 약속을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서로 용서하고 받아들이고 사랑하고 세상을 향해 우리 자신을 여는 것은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소망의 내용을 묻는 이들에게 주저하지 않고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의 나라가 오고 있고, 그분의 뜻이 우리 가운데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오늘의 현실에 좌절하고 낙심할 때가 많았고, 우리 자신에 대해서도 실망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주님의 뜻이 이 땅에서 온전히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기도하며 살도록 우리를 불러주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 우리가 아버지의 온전하신 뜻을 깨달을 수 있게 해주시고, 그 뜻 앞에 우리 자신을 내려놓을 수 있게 해주시옵소서. 그래서 우리의 뜻이 아니라, 우리의 욕심과 이상이 아니라, 오직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이 나라에, 우리 가정에, 우리의 삶에, 또 우리가 섬기는 이 교회에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해주시옵소서. 기도를 가르쳐 주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