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천천히
작성일 2018-05-26 (토)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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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령 강림과 구원 ”

우리는 모두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실 주님이라는 사실을 믿습니다. 그렇다면 이 시간에 조금 더 진지하게 스스로에게 질문해보십시오. 신앙생활을 성실하게 하신 분은 긍정적인 대답에 무게가 가겠지만 그렇지 못한 분은 확신이 서지 않을 겁니다. 어느 쪽이었든지 예수님을 주님으로 인식하고 믿는다는 것은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닙니다. 지금 저는 경건의 모양이라는 차원으로 말씀드리는 게 아닙니다. 그런 것은 신앙의 경륜만 있으면 저절로 주어집니다. 기도를 세련되게 하고, 남이 인정할 정도의 교회나 사회봉사도 가능합니다. 우리가 예수를 주님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훨씬 근원적인 차원입니다. 믿음의 능력을, 구원의 능력을 가리킵니다. 믿음은 믿는 척 포즈를 취하는 게 아니라 믿음의 능력에 휩싸이는 겁니다. 생명의 힘에 휩싸이는 겁니다.

하지만 어떤 분들은 다르게 생각할 겁니다. “믿음생활을 뭐 그렇게 절대적인 차원으로, 뭔가 신비한 차원으로만 강조할 필요가 있느냐?” 하고 말입니다. 세상살이에 지친 사람들에게는 그런 것이 가능하지 않다고 말입니다. 네, 일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사도가 될 수는 없습니다. 뛰어난 신학자, 영성가가 될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다를 게 별로 없습니다. 돈이 없으면 기가 죽고, 자식이 말썽을 피우면 속상합니다. 주님은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걱정하지 말라고 했지만, 우리는 그런데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실제로 살다보면 신앙이 있는 건지 아닌지 구분이 되지 않을 때도 많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최소한 교회 테두리 안에서 살아가는 것만 해도 대견해보입니다. 맞습니다. 저도 유별나게 신앙생활 하는 걸 좋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가정과 사회생활을 거의 팽개치다시피 하면서 교회생활에 몰두하는 것은 누가 봐도 건강하지 않으니까요.

여기서 제가 말씀드리는 믿음의 능력은 ‘구원에 대한 집중력’을 가리킵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는 요엘의 외침에 우리가 집중하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얼마나 교회에 잘 나오느냐 하는 차원이 아닙니다. 교회에 아무리 잘 나와도 구원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있고, 교회에 나오지 않더라도 구원에 집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구원이라는 말이 손에 잘 잡히지 않으면 평화라는 말로 바꿔서 생각해보십시오. 지금 우리는 평화에 집중하고 있을까요? 안식이라는 말로 바꿔서 생각해보십시오. 지금 우리의 영혼은 안식을 누리고 있나요? 이런 질문에 자신이 없는 분도 있을 겁니다. 그런 것은 아예 생각해보지도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교회에 오래 다닌 분들에게서 오히려 그런 현상이 많이 일어납니다. 습관적으로 신앙생활을 할 뿐입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이 삶의 본질에 대한 질문은 제쳐두고 사회 구조가 요구하는 것에 기계적으로 맞추며 살아가듯이 말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생명에 눈을 뜨라고 아무리 외쳐도 들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무언가를 열정적으로 하긴 하는데, 영혼의 안식도 없고, 평화도 없고, 영생에 대한 참된 기쁨도 없습니다. 그런 것을 문제로 여기지도 못합니다. 여러분, 이런 사람은 구원에 대해서 무감각한 사람입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에 대해 실제적인 관심이 없는 사람인 것이지요.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구원에 대한 관심과 거기에 눈을 뜨는 것은 억지로 되지 않습니다. 그럼, 어떻게 되나요? 오직 ‘성령’만이 그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초기 기독교의 시작이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이었다는 사실은 바로 그것을 의미합니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성령 경험을 통해서 전혀 새로운 생명 현실에 눈을 떴습니다. 오늘 우리도 그들과 똑같습니다. 성령 경험을 통해서만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할 주님이라는 사실에 실제로 마음이 갑니다. 그리고 구원에 집중하게 됩니다. 거꾸로 구원에 온 영혼을 기울이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그는 성령을 경험한 사람입니다. 오늘은 ‘성령강림절’입니다. 진지하게 자신에게 질문해보십시오. ‘나는 성령을 경험한 사람인가, 나는 구원을 경험한 사람인가? 거기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가?’

오늘은 ‘교회설립기념주일’이기도 합니다. 진지하게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 교회는 궁극적으로 무엇을 목표로 하는 교회인가? 우리의 주님이자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인가?’

진지하게 물으면서 바른 신앙생활과 바른 교회를 만들어나가려고 노력하는 여러분에게 성령 강림의 축복이 임하기를 바랍니다. ▣

- 지난주일 설교 중에서 (사도행전 2장 14~2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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