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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에서 "사랑과 진실이 눈을 맞추고 정의와 평화가 입을 맞추리라. 땅에서는 진실이 돋아나오고 하늘에선 정의가 굽어보리라." (시편85:10~11) 어둠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오랜 동안 사제생활을 하면서 나는 어둠이 사라지지 않고, 요한복음에 기록된 대로, 빛이 어둠 속에 비추고 있는데 어둠이 빛을 이겨본 적이 없다(요한1:5)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것은 그리스도교식으로 말한 음양(陰陽)이고, 역설과 신비에 대한 우리의 신조다. 우리는 어둠을 몰아내기 위하여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야 한다. 특히 이 시대의 많은 사회문제들에 있어서 그렇다. 우리는 세계의 굶주림이 사라지기를 바란다. 지구자원을 무기생산에 낭비하는 일이 끝나기를 바란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사람을 죽이는 일을 우리가 끝장낼 수 있기를 바란다. 하지만 어떤 점에서 우리는 어둠이 항상 여기 있을 것이며, 우리의 유일한 문제가 어떻게 빛을 받아들이고 그 빛을 퍼뜨릴 것인가에 있다는 사실 앞에 무릎 꿇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항복이 아니다. 십자가의 항복이 아니듯이! 그것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독특한 성격과 프로그램 안으로 들어가는 참된 전환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실제로 어둠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 어둠과 창조적으로 그리고 담대하게 관계 맺으며 사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 다른 말로 하면, 어둠을 '빛'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이다. 어둠을 '선'이라고 부르지 마라. 죄익이든 우익이든 너무나 많은 사람이 그 유혹에 넘어가고 있다. 그들은 분별하는 지혜를 따로 배우지 않았다. 우리의 내적 긴장을 해소하는 가장 통속적인 방법은, 어둠을 어둠이라 부르지 않고 그것도 괜찮은 빛이라고 봐주는 척하는 것이다. 긴장을 해소하는 또 다른 방법은 어둠에 대하여 분노하면서 강하게 배척하는 것인데, 그러면서 결국 그것을 비치는 거울이 되고 만다. 당신만 모르고 모두가 알고 있다! 그리스도인의 지혜는 어둠을 어둠이라고, 빛을 빛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리고 빛 속에서 살고 일하는 법을 배워, 어둠이 우리를 이기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우리가 만일 만사를 아름답게만 보는 태도로 살아간다면, 밀과 가라지를 분별하지 못하게 되고, 결국 어둠의 함정에 빠지고 말 것이다. 반대로, 어둠만을 보고 그보다 크고 근본적인 빛을 망각한다면, 자신의 비관주의와 운명론에 의하여 파멸되거나 자기가 어둠에서 떠나 있다는 착각에 스스로 속을 것이다. 우리는 언제 어디에서나 빛으로 존재하시는 하느님을 의심하지 말고, 우리 또한 빛이라는 사실(마태5:14)을 기억하고, 어둠 속에서 기다리며 희망을 품고 일해야 한다. 그것이 어둠을 통과하여 더 큰 빛으로 들어가는 하느님의 좁은 산도(産道)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