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미 동이 튼 세상 속에서 ”
오늘의 말씀은 사무엘이 아직 어릴 때의 일입니다. 사무엘은 하나님의 언약궤가 있던 실로의 성막에서 자랐습니다. 왜 어린 아이가 가족과 함께 살지 않고 성막에 살았을까요?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는 원래 아이를 낳지 못하던 여인이었습니다. 그가 하나님께 서원하고 얻은 아들이 사무엘입니다. 한나는 사무엘이 젖을 떼자 서원을 따라, 아들을 하나님의 성막에 바쳤습니다(그 때는 아직 성전이 건축되지 않은 성막시절). 그래서 사무엘은 어려서부터 실로의 성막에서 엘리 제사장의 지도를 받으며 자라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께서 어린 사무엘을 세 번이나 부르셨는데, 사무엘은 그렇다 치더라도 평생 하나님의 일만 해 온 엘리조차 이를 깨닫지 못합니다. 사무엘상 기자는 그 이유를 이렇게 암시합니다. “그 때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한 시대였다.”(1절)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한 시대는 어떤 시대일까요? 아모스 선지자의 말입니다. “그 때는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기갈의 때다!”(암 8:11) 말씀의 위기의 때가 곧 흉년의 위기와 가뭄의 위기보다 더 큰 위기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 시대는 어떨까요?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하던 엘리 제사장 시절과는 달리, 하나님의 말씀이 풍성한 시대입니다. 먼저 신학교가 많습니다. 그 신학교에서 배출한 말씀 사역자들이 넘칩니다. 기독교 방송마다 유명 목회자의 설교가 쉼 없이 전파를 탑니다. 교회의 홈페이지를 보면 설교동영상이 가득합니다. 기독교 전문출판사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소개하는 책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그렇게 보면 오늘날은 하나님 말씀이 차고 넘치는 축복의 시대입니다. 하지만 속사정은 다릅니다. 홍수 때에 오히려 마실 물이 귀하다고, 하나님의 말씀이 차고 넘침에도,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듣지 못하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집니다. 가짜 복음을 전하는 사역자들이, 듣기 좋은 성공, 하나님의 뜻과는 무관한 번영, 자신만을 위한 건강과 치유 등의 달콤한 메시지로 교인들을 유혹합니다. 그런데 교인들은, 마시면 안 되는 더러운 물이 어떤 물인지, 마셔도 좋은 깨끗한 물이 어떤 물인지, 잘 알지 못합니다. 교회 안팎의 많은 사람이 교회의 목회세습을 불법이라 해도, 해당교회 교인들 대다수는 세습한 부자(아버지-아들) 목사들의 메시지를 둘도 없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깁니다. 교단장까지 나서서 교회세습은 불법이므로 철회해야 한다고 지적해도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이미 세습을 하나님의 뜻으로 보는 것이지요. 아, 왜 그러는 그럴까요?
오늘 본문 2절에 그 이유가 있습니다. “엘리의 눈이 점점 어두워 가서 잘 보지 못했다.” 중의적 표현입니다. 그가 단지 나이가 많아 노안이 되었다는 게 아닙니다. 성서기자는 엘리 제사장이 육신의 눈뿐만 아니라, 영의 눈까지 어두워졌다는 사실을 그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당시 엘리의 영안이 어두웠던 것처럼, 오늘날 한국 교회는 목회자와 교인들 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의 영안이 어둡습니다. 그러니 그 교회 원로목사가 목회 세습을 해도 당회, 임원회, 공동의회를 다 통과합니다. 눈이 먼 겁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소위 말씀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왜 그토록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는지 안타깝기만 합니다. 그런데 천만 다행인 것은, 하나님께서 세 번째로 사무엘을 부르셨을 때 이번에는 엘리도 그것이 하나님의 음성임을 깨닫습니다. 그는 사무엘에게 만약 다시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리거든 “여호와여 말씀하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대답하라고 일러주었습니다. 사무엘이 다시 자리에 누웠을 때, 여호와께서 그를 네 번째 부르시자, 사무엘은 엘리가 일러준 대로 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당신의 계획을 하나하나 사무엘에게 말씀해주셨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엘리 제사장의 영안은 완전히 닫힌 게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엘리가 사무엘을 통해 들은 하나님의 말씀은 자신의 집안몰락에 관한 메시지였습니다. 그러나 엘리는 그 말씀을 “여호와께서 선하신 대로 하실 것이니라.” 그대로 받아들입니다(3:18). 그런 점에서 엘리는 위대한 제사장이이었습니다. 그는 어린 아이에 불과한 사무엘을 통해 들려온 하나님의 말씀을 잘 분별했고, 그 말씀이 자신에게 유리하고 불리하고를 떠나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이 늘 선하고 의롭다는 사실을 믿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엘리를 잘못된 제사장의 표본으로 여깁니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는 엘리 수준의 지도자를 만나기도 쉽지 않습니다. 많은 이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분별하지 못하고, 자신의 이해타산을 따져 말씀을 판단합니다. 그러기에 수백 건에 달하는 한국 교회의 목회세습이 왜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일인지 알지 못합니다. 대형교회 건물이 공공도로를 점유해도 그것이 죄인 줄을 모르고, 다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이라고 믿습니다. 그런 지도자들이 가득하다면 우리에게서는 사무엘과 같은 새로운 세대가 나오기 어렵습니다. 그런 점에서 한국교회에 희망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러나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이제는 등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이미 동이 터 올랐기 때문입니다. ▣
- 지난주일 설교 중에서 (사무엘상 3장 1~1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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